선운사에 상사화가 가득 피었단다며, 들뜬 친구의 말에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선운사.
등산을 즐겨하던 십여년전에 선운사를 갔다기 보다, 선운산 도솔암을 몇 번 갔었다.
등산으로 지친 발걸음이 쉬어가던 선운사였다.
내게 선운사는
비 오던 어느날은 고즈넉한 차밭.
이른 봄 어느 날은 대웅전 뒤로 핀 동백꽃.
또 어떤 이유로 슬펐던 어느 날은 선운사를 빠르게 비켜내려와
절 입구 막걸리집에 앉아 떠올린 서정주 시인의 '동구'라는 시에 나오는 주모였다.
한국전쟁에서 죽었다는 쉰 목소리의 주모,
시인은 그 여인을 그렸고,
나는 보지도 못한 그 여인을 그리워했다.
동백꽃도 그 여인이었고, 상사화도 그 여인이었고, 선운사에서 들리는 목탁소리도 그 여인이었다.
절 입구 계곡 건너편에 있는 천연기념물 송악, 바위로 파고 들어 뿌리를 내린, 한 그루 아닌 한 그루의 나무도 그 여인었다.
선운사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선운사 동구에서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선운사 주차장부터 새로 만든 길 양 옆으로 다 져버린 상사화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붉은 기가 남은 상사화를 찾아다닌다.
꽃말때문인가, 왜지?
상사화 밭을 지나며, 지지 않았을 몇 주 전 절 앞은 피바다처럼 붉었을 거라 생각했다.
내년 이른 봄에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
아니 그 전에 선운사 앞 길 단풍이 물들 때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붉은 것이 아름다운, 단풍과 동백을 봐야겠다.
푸르디 푸른 것이 붉디 붉은 것으로,
붉디 붉은 채로 바닥으로 떨어져 반영(反映)이 되는,
이미 붉지 않으나, 여전히 붉은 단풍과 동백이 그리웠다.
전쟁통에 죽은 주모가 부르는 육자배기 소리가 스며있을 선운사를 기약한다.
상사화가 시들어 잿빛을 띤 채 꽃대궁에 매달려 지천으로 깔려있는 선운사는
주모가 안내해 주었을 선운사에 어울리지 않았다.
.
.
.
그런데, 상사화를 본 탓인가?
무엇인가, 그리웠다.
친구에게 담에 한 번 더 오자고 했다.
서울로 오는 길, 노을이 너른 벌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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