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앉아 있기가 답답해 몸이 뒤틀다 괜히 사무실 3층으로 내려갔다.
이 부서 저 부서 순례를 하고 올라오는 데 계단 옆 기둥에 메모장이 붙은 곳에 눈길이 갔다.
어제도 보고, 며칠 전에도 보았는데,
그때는 바빴고, 오늘 한가해, 그 자리에서 읽어본다.
좋은 글들이네.
글씨도 참 이쁘다.
우리 직원 중 누가 쓴 것 같네.
이런 이쁜 짓을 사무실에 해 두었구나.
회사를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오늘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내려 바쁜 걸음으로 가는데, 저 앞에서 여자 두 명이 출근길에서 만났는지,
까르르, 심하게 반가워한다.
스윽 봤더니, 같은 회사 직원이다.
그 옆으로 또 한 명의 남자 직원이 아는 척을 한다.
두 여직원은 나한테, 그 남자 직원한테 번갈라 인사를 하느라
아직 멎지 않은 웃음을 마저 웃느라 정신이 없는지 더 웃는다.
인사를 하고 나란히 걷는 것이 그래서, 좀 빨리 걸어 앞으로 나가니,
따라오던 남자 직원이 옆으로 선다.
저렇게 반가워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고 눈이 갔다고 말하자.
그도 그래서 눈이 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녀들을 돌아보면서 한 번 더 웃었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두 여직원들의 웃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메모를 붙인 이가 그녀들 중에 한 명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직원일 수도 있다.
무엇이던, 좋다.
반가운 일이다.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동료가 그렇게 반가운 것은 너무 좋은 일이고,
책을 만들면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예쁜 색의 메모지에 정성스럽게 옮겨 적어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기둥에 붙여두는 것도 너무 좋은 일이고,
누군가 글자 가득한 책 안에서 특히 맘에 들어 골라 놓는 글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너무 좋고,
옮겨 놓은 말들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것도 너무 좋은 일이고,
나는 중국 출장 후 정신없이 일 하다가, 한가해진 시간에 눈길을 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좋은 일이고,
그걸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직원이 이뻐서 찍느냐고 말을 붙이는 금요일 퇴근 한 시간 전 풍경으로는 너무 좋은 일이고,
이 메모장으로 좋은 일이 많은 금요일이 되었다.
내 멋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말고 그에게로 다가가 진심을 다해 물어보는 것은 소통의 기본입니다.
사랑은 예감할 때 아름답지만 소통은 명쾌할 때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를 정성껏 보살필 때 나는 비로소 행복감을 느낍니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향해 진실로 친절할 수 있으며,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긍정적인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우리는 악마도 아니고 천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타인과 평등하게 존중받기를 원하는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 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상대방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 아닐까요?
사납고 복잡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고 있는 우리에게 어미 판다가 말합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내 생각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의 틀'을 부수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당신이 가진 뾰족한 가시를 당신의 운명처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시가 없는 당신을 세상이 송두리째 삼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옮겨 적다 보니, 이철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에 나오는 말들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눈을 통해, 마음으로 가서, 맺히고,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동안,
글은 저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누군지 모르지만 땡큐다.
오직 이 메모만으로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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