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았던 크리스마스 이브, 지난 금요일에 저녁 약속때문에 회사에 둔 노트북을 가지러 회사에 가야만 했다.
크리스마스를 낀 주말 동안 두 대의 노트북을 놓고 학교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집에서 나온 시간이 오후 두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빈속으로 나왔더랬다.
눈이 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날씨는 제법 춥고 흐렸다.
묵직한 노트북을 들고는 비플러스 카페 주인, 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있으면 들렀다 가려 한다고 했다.
아무도 없다고 얼른 오라고, 그런다.
카페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꽤 오랫동안 비플러스를 들락거렸는데, 그 시간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던 건 처음인 듯 낯설었다.
진아는 오만상을 하며,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아직 마수도 못했다 했다.
마수? 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야겠다고, 음료 중에는 가장 비싼 글뤼바인을 주문했다.
진아는 주방에서 자신이 개발했다는 레시피로 글뤼바인을 만들고,
나는 그 옆에서 구경하고,
글뤼바인은 우리들의 하염없는 수다 속에 아주 천천히 만들어졌다.
나는 글뤼바인을 만드는 속도가 삼시세끼의 에릭같다고,
또 삼시세끼의 에릭의 속도가 참 좋다고, 그렇게 느리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딱 좋다고 했고,
진아는 그렇게 느린 에릭은 자기 스타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데도, 여전히 추워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드디어 따뜻한 글뤼바인이 완성이 되고, 한 모금!
"진아야, 몸이 녹아. 분명히 지난 4주 동안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따뜻하고, 가장 맛있어. "
"진짜?"
진아가 만들어 준 글뤼바인을 꽤 많이 먹었지만, 이번이 최고였다.
진아의 레시피는 진화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했고, 화목했다.
한 잔의 글뤼바인을 마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지? 내 몸은 완전히 녹았다.
심지어 따뜻하게 데워졌다.
"진아야, 완전 따뜻해졌어. 신기해."
"진짜? ...내가 좀 잘 만들어. 사람들이 글뤼바인을 찾아."
그 사이 몇 사람의 손님이 들어오고, 그들 중 두 명이 글뤼바인을 시켰다.
이 사람들도 곧 따뜻해질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딱 좋았다.
그리고 컴백홈.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두 대의 노트북을 켜놓고, 지난 학기 성적 평가를 했다.
중간고사대체가 기획서를 쓰는 것이었다면, 기말고사대체과제는 한챕터의 원고를 쓰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간고사과제로 제출했던 기획서를 다시 수정해서, 한챕터의 원고와 다시 보냈다.
기획서로 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 실제로 써보니, 달랐던 모양이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과제였는데, 몇 번이고 일이 되도록 기획서를 수정한 학생들이 대견하다.
달라진 기획서와 한 챕터의 원고를 꼼꼼이 읽었는데, 모두들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에 한 챕터의 원고를 쓸 때, 그냥 개발새발 쓰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었다.
원래 작가들도 초고는 '개발새발'이라고,
일단 어디서 어디까지 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작가의 뒤에는 편집자가 있으니까 믿고 '개발새발' 일단 쓰라고 했었다.
그런데 제법 잘 써서 기특했다. 점수를 잘 줄 수 밖에 없었다.
레포트를 제출한 학생들 몇몇은 메일과 의견란에 내게 보내는 메모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읽는데, 어리고 순수한 마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또 따뜻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이어야겠구나 생각하며, 그 마음으로 학생들의 대견한 글들을 모두 읽었다.
느리게 느리게 1박2일 동안, 밤 아홉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한학기 동안 복잡했던 회사일과 함께 하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회사에 나가 굳이 가져온 노트북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리고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글뤼바인 한 잔으로 끌어올린 체온에,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메일들로 따뜻한 체온이 잘 유지된 괜찮은 크리스마스였다.
따뜻한 것, 행복한 것
둘은 참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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