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바르셀로나에 온지 나흘만에 바다에 왔다. 이 바다는 바다라고 할 수 없을만큼 잔잔하고, 이 사람들은 바다에 왔다고 할 수 없을만큼 조용하다. 삼삼오오 모여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한두명쯤 수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면서 일광욕을 즐긴다. 늘 바다 곁에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 바다의 주인이 조용하니 관광객들도 덩달아 조용하다. 그래서 바다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잔잔한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좋다. 거칠게 밀러오는 파도소리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것이 있지만,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도소리는 천천히 등을 쓸어주는 누군가의 손 같다. 내가 누군가의 등을 쓸어준다면 나도 이같이 쓸어주겠다 생각했다. 살살 그리고 끈기있게 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바다가 조용하니, 작은 판자 하나에 몸을 싣고 노를 저어 바다를 가로지르는 레저까지 생긴 모양이다. 천천히 중심을 잡고 노를 저어 이쪽저쪽 바다를 왔다갔다 한다. 이 사람들이 조용히 바다를 마주하는 동안 며칠천부터 산티아고에서 죽은 발톱이 덜렁거리기 시작해 성가시던 것을 잘라냈다. 검지발톱에 이어 두번째이고 곧 새끼발톱도 빠질 것이다. 죽어서 덜렁거리던 발톱을 잘라내었더니 시원하고 좋은데 발톱 아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그 모양이 징그럽기 이를데 없다. 이제 맨발에 샌들을 신을 수 있을 까? 발톱이 차례로 빠지는데, 산티아고를 내게 걸을만 한 것이었을까. 나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만 하지 않았다. 그토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게 그 길을 걸었는데, 그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해도 의미가 붙지 않는다. 왜 그런거지? 발톱처럼 감각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을 멈추기 위해 레이 한봉지를 먹으며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빠져나가는데, 그저 스치는 사람들이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 이라는 생각한다. 해변에 나란히 앉아 서로 쓸어주는 남남커플, 오래도록 키스를 나누고 있는 남녀커플,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예쁜 여자, 또 그 사람들 사이에 누드로 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 뛰고 있는 남녀, 나,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사이를 정말 다른 내가 레이를 바사삭거리며 지나간다. 그들 사이를 오늘밤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바로셀로네타 비치를 걷는다. 내게 의미 없다고 한 산티아고길에서 만난 사람들 말이다. 가장 먼저 한스가 생각나고, 페페가 생각나고, 나탈리가 생각나고, 데이빗도, 라호르도, 에밀리아도, 엔리코에게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였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건 너무나 분명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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